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이별 - 윤동주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액--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버선본 - 윤동주


어머니

누나 쓰다 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가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버선본 만드는걸.


어머니

내가 쓰다 버린 몽당연필은

두었다가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천 우에다 버선본 놓고

침 발러 점을 찍곤

내 버선 만드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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