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보는 밤 -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산상 - 윤동주


거리가 바둑판처럼 보이고

강물이 배암의 새끼처럼 기는

산 우에까지 왔다.

아직쯤은 사람들이

바둑돌처럼 버려 있으리라.


한나절의 태양이

함석지붕에만 비치고

굼벙이 걸음을 하든 기차가


정차장에 섰다가 검은 내를 토하고

또 걸음발을 탄다.


텐트 같은 하늘이 무너져

이 거리를 덮을까 궁금하면서

좀더 높은 데로 올라가고 싶다.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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