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바다가 되어 - 윤동주

하로도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기고......잠기고......
저--왼 검은 고기 떼가
물든 바다를 날아 횡단할고.

낙엽이 된 해초
해초마다 슬프기도 하오.

서창에 걸린 해말간 풍경화.
옷고름 너어는 고아(孤兒)의 서름.

이제 첫 항해하는 마음을 먹고
방바닥에 나뒹구오......뒹구오......
황혼이 바다가 되어
오늘도 수많은 배가
나와 함께 이 물결에 잠겼을 게오.

돌아와 보는 밤 -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산상 - 윤동주


거리가 바둑판처럼 보이고

강물이 배암의 새끼처럼 기는

산 우에까지 왔다.

아직쯤은 사람들이

바둑돌처럼 버려 있으리라.


한나절의 태양이

함석지붕에만 비치고

굼벙이 걸음을 하든 기차가


정차장에 섰다가 검은 내를 토하고

또 걸음발을 탄다.


텐트 같은 하늘이 무너져

이 거리를 덮을까 궁금하면서

좀더 높은 데로 올라가고 싶다.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이별 - 윤동주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액--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버선본 - 윤동주


어머니

누나 쓰다 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가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버선본 만드는걸.


어머니

내가 쓰다 버린 몽당연필은

두었다가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드니

천 우에다 버선본 놓고

침 발러 점을 찍곤

내 버선 만드는걸.

무서운 시간 - 윤동주


거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프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https://www.lds.org/general-conference/2012/04/the-merciful-obtain-mercy?lang=kor&country=ca/



물론 우리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교리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모두 구주께 의지합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분 없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우리 죄에 대한 용서에는 조건이 따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다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서로 용서해야 하느니라. 이는 …… 용서해 주지 아니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정죄 받음이니, 더 큰 죄가 그에게 머물러 있음이니라.”3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4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때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거나 악의를 품을 때, 그 해로운 결과를 분명하게, 그리고 쉽게 봅니다. 물론, 사람들이 우리를 판단할 때, 우리는 그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편견이나 불만에 대해 말할 때에는 자신의 노여움은 지당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은 신뢰성 있고 적절하다며 합리화하기 일쑤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쁜 사람이나 나쁜 동기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런 것처럼 추정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비통함과 관련해서는 예외를 둡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경멸할 만한 충분한 정보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인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순간,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죄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5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죄이며, 구주께서도 경고하신 죄입니다. 구주의 제자들은 “서로 대적할 기회를 찾으며, 마음에 서로 용서하지 아니하더니, 이 악으로 인해 그들[은] 고난을 겪고 심히 징계를 받았[습니다.]”6

구주께서 이 부분에 대해 대단히 명확하게 말씀하셔서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려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7

한 가지 점을 분명히 해도 되겠습니까? 주님이 모든 사람을 용서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에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때때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중 가장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며, 동시에 가장 용서가 필요한 이는 바로 거울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People might not get all they work for in this world, but they must certainly work for all they get. -Frederick Douglass-

I've always believed that if you put in the work the results will come


-Michael Jordan


In all human affairs there are efforts, and there are results, and the strength of the effort is the measure of the result.


James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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